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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담는 보자기 

 

내 인생의 전리품 

 

스물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변호사가 되기 위해 10여 년 이상 손 놓았던 학업을 시작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어려울 때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늘 계시던 고향 구룡포 앞바다와 마구 헤엄쳐 놀던 바다 속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며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드디어 서른넷에 사법 시험에 합격하고 나니 인생은 참 재미있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차비가 없어 고등학교를 중도에 포기한 뒤 공장에서 그토록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제야 그 모든 것이 나를 단련시켰음을 깨달았다.

  

나이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외모 탓에 변호사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중년 고객들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저렇게 어린 사람에게, 세상 물정도 모르는 사람에게 무슨 인생사를 늘어놓을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는 게다. 그럴 적마다 나는 말한다. “보기에 이래도 저도 인생을 조금은 압니다.”

돈이 없다는 것, 어린 나이에 엄마가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내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형제를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심정이 어떨지 나도 조금은 안다.

  

하지만 고향인 제주도 우도를 떠나 낯선 타향에 살며 하루 종일 바다에서 물질해서 어린 자식 다섯을 홀로 키우면서도 한 번도 찡그리거나 힘든 표정을 짓지 않으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에게 닥치는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어린 시절, ‘삶’이라는 단어를 무척 좋아했다. 한자 공책 네모 칸에 ‘삶’이라는 글자를 써 놓으면 꽉 들어차 보여 참 좋았다. 나는 힘들고 지쳤던 순간에도 삶의 끈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늘 나와 동행하시는 어머니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물질하러 바다 속에 들어간 어머니는 내가 “하나, 둘, 셋…백…”이라고 숨이 차도록 숫자를 세도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지 않으셨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하고 있을 때야 비로소 어머니는 “휴~”하고 머리를 들곤 하셨다. 지금은 비록 뵐 수 없지만, 오늘도 나는 어머니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바다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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