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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가 물 밖에서 파닥거리다가 다시 물 속에 던져진 모습 그 자체였지 ' 

 

김미애

동아대학교 법학과 졸업

사법시험 44회

사법연수원 34기 

 

들어가면서 

 

먼저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 무겁고 부담스럽습니다. 아직 모나고 부족한 부분이 너무나 많기에 감히 여러분에게 제가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를 헤아려 보면 더욱 초라해지고 맙니다. 그러나 제가 용기를 내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이처럼 부족한 저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을 여러분께 자랑하기 위함이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 불안한 자신의 미래를 안고 어정쩡하게 서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저의 얘기가 자극제가 되고 용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제 소개를 하자면, 저는 경북 포항시 구룔포라는 작은 어촌마을 가난한 집안의 2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나서 여느 시골아이처럼 어린시절을 자연과 더불어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물론 어촌의 특성상 저희 마을에는 교회가 없고 이웃마을에 교회가 있었으나, 저희 집은 불교와 용왕님께 제사를 드리는 당시의 보통 어촌가정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저도 항상 불교도임을 표방했고, 교회 다니는 아이들을 도맡아서 핍박했고, 심지어 초등학교 바른생활 책에 나오는 '사랑'이라는 주제 아래에 실린 예수님 그림에 낙서하고 부처님, 자비로 모든 내용을 바꾸기도 하는 극성도 부렸습니다. 이러던 제가 변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초등학교 5학년 봄에 일어났습니다. 

 

어머님의 암 말기,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고 

 

열두 살이던 해 봄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많이 편찮으셔서 아버지와 함께 병원에 가셨는데, 일주일이나 지난 후 아버지 혼자서만 집에 돌아오셔서 어머니 옷가지들을 챙겨서 다시 병원으로 갔다 오겠노라고 말씀하시면서 오빠랑 잘 지내고 있으라는 말씀만 남기셨습니다. 

 

저는 그 때 앞이 캄캄했습니다. ' 아 이제 어쩌나? 엄마가 무슨 큰 병에 걸리셨나보다. 내가 할 일이 뭘까? ' 를 고민하다가 집 앞마당에다 상을 펴놓고 그 위에 물 한 그릇 떠 놓고는 내가 아는 모든 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그 때까지 단지 엄마가 절에 다니신다는 이유로 핍박하던 예수님, 엄마가 믿던 부처님, 용왕님, 산신령님 등등, 내가 아는 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마당에 무릎 꿇고 앉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 제발 우리 엄마 큰 병 아니게 해주시고 빨리 나아서 집에 돌아오게 해 주세요 '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나의 기도와는 상관없이 엄마는 약 3개월 후 핏기하나 없는 몸으로 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 오셨습니다. 

 

그 때 어머니께서 저에게 같이 교회 다니자고 하셨습니다. 그 날이 제 기억으로 1981년 6월 22일 수요일이었고, 어머니와 저는 수요예배에 참석했던 것 같습니다. 그 후로 저는 오직 어머니 병 낫게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 예수님 우리 엄마 낫게 해 주세요 " 라고 열심히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구역예배,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인근 7,8개 교회의 부흥회에 빠지지 않고 어머니를 때로는 리어카를 태우고 모시고 다녔습니다. 저는 항상 걷지고 앉지도 못하셔서 마룻바닥에 누워 계시는 어머니 옆자리에 앉아서 목사님 눈에 띄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엄마 안수기도라도 한 번 더 받게 해 드리려고 말입니다. 매일 하혈을 하셔서 몸에 핏기 하나 없이 누워 계시는 어머니는 암 말기 환자의 그 극심한 고통에 정말 많이 힘들어 하셨습니다. 엄마가 고통스러워 할 때마다 저는 자동으로 일어나서 혼자 예배를 드렸죠. 그러면 어머닌 감쪽같이 평안히 주무시곤 했어요. 그 당시 전 매일매일 주님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당시 어머니의 병원비, 수혈비용 등으로 집안은 더욱 어려워졌고 그래서 제가 집안일을 하며 학교를 다녔기에 공부할 시간, 참고서 살 돈도 없어서 수업시간에 열심히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 속에는 하나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먼 훗날 내가 훌륭한 모습으로 성인이 되었을 때 누눈가가 나에게 마이크를 갖다 대고 " 당신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 라고 물으면 "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현실화되어 얼마 전에 모 신문사에서 인터뷰할 때 그 기자에게 그대로 간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 어머닌 정말 거짓말같이 나으신 것 같았으나, 추석 때 제사 준비를 하신 후 급속도로 악화되어서 제가 중2때 결국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그 후 저는 엄마 따라 죽겠다는 어머니 생전의 생각과는 달리 '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 하는 생각이 저를 지배했음에 스스로 경악했고 그런 현실이 너무나 서글펐습니다. 

 

어머니와 헤어지고 어둠에 갇힌 생활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나자 집에 우환이 갑자기 몰아쳤습니다. 빚은 말 할 것도 없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포항여고에 입학금을 겨우 내고 학교를 다녔으나 차비가 없어서 아침마다 남의 집에 차비 빌리러 다니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빌려주지 않았고, 유일하게 토요일에 교회가면 목사님께서 아무 말 없이 저를 화단에 앉히시고 머리에 손 얹고 기도해 주시고는 당신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두 털어서 저에게 주셨죠. 저는 그 돈으로 일주일을 버티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활이 오래 갈 수 없는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습니다. 반 학우들의 '거짓된 베풂'이 제 자존심을 상처 낸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 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검정고시로 고졸하고 대학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친구 따라 도망치듯 그 끔직한 고향을 떠나 부산으로 갔습니다. 

하루에 서너 시간 자며 점심을 굶고, 참고서가 없어서 숙제도 못 해가고, 친구들로부터 소외당하는 기분으로 암흑 속에서 살다가 내 마음 위로해 주는 친구들과 지내니 그냥 마음 편하고 좋았습니다. 그러면서 정신적인 해이가 생기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세상을 알아가면서 차츰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고1때, 내 나이 열일곱 때 나의 방황이 시작되었죠. 저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요셉을 좋아하는데 그 요셉은 열일곱에 형들로부터 배신을 당했으나,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했기에 서른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될 수 있었으나 저는 그러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 산 것이 제 인생에 가장 큰 후회로 남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물질만능주의 사고로 생활했습니다. 

 

놀기 좋아하고 세상 유흥에 빠지며 오로지 많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 늘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 속에서 이것저것 해가며 돈을 모았고, 스물넷에 조그만 초밥집을 하면서 수입도 꽤 괜찮았죠. 그 때쯤 가게 바로 앞에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의 목사님, 전도사님게서 단골로 자주 오시면서 교회에 놀러 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래도 건성으로 "예"하고 대답만 했지,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득문득 찾아오는 공허감, ' 어릴 때 내 꿈은 이게 아닌데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 라는 생각과 또 ' 생활은 힘들어도 엄마랑 같이 교회다닐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는데 '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쉽게 하나님께로 돌아가지는 않았습니다. 매일 큰 돈을 만지면서도 밀려드는 공허함은 어쩔 수 없어서 차를 몰고 여기저기 정처 없이 돌아다니길 잘 했어요. 그 즈음 어느날 부산 부전시장에 갔다가 가게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명륜동 지하도로 내려가는 순간 양 벽이 나를 행해 달려오는 듯한 환상을 보고 ' 아! 이러다가 죽으면 나는 어쩌지 ' 하는 생각과 함께 ' 빨리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는데 ' 라는 생각을 잠시하고는 또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사탄의 공격이 있었는데 제 입에서 " 이 더러운 귀신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지어다 " 라는 기도가 약 9년을 교회를 다니질 않았는데 나왔고, 그 때 상대방이 입에서 시커먼 피를 토하면서 뒤로 자빠졌습니다. 그리고는 꿈에서 울면서 손들고 ' 주님, 이제 돌아가겠습니다. ' 하고 눈을 떠 보니 주일날 오전 10시쯤 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누군가에게 들은 대로 수영로교회로 차를 몰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 날로부터 다시 주님의 품에 안기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저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끈질기게 어두움에 갇혀 살게 버려두시지 않으시고, 빛으로 끌어 내 주셨습니다. 

 

다시금 주님의 품에 돌아오다. 아! 그 감격이란 

( 물고기가 물 밖에서 파닥거리다가 다시 물 속에 던져진 모습 그 자체였지 ) 

 

1994년 11월 3일 주일, 그 날은 나의 또 다른 생일입니다. 나는 그 날 어두움의 구렁텅이에서 주님의 극진한 사랑의 힘으로 다시 빛 가운데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모습 때문에 마음껏 주님을 섬길 수가 없다는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모습 때문에 마음껏 주님을 섬길 수가 없다는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예배시간에 다 참석하고 싶은데, 내가 하는 가게일 때문에 저녁 시간을 낼 수가 없는 것이 너무도 속상했습니다. 그러던 중 1995년 1월1일 신년기도회 때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 하나님! 지금껏 저를 지켜주신 하나님! 이제 앞으로의 삶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고 싶습니다. 지금 하는 가게 빨리 정리하게 해 주시고 새로운 일을 하게 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가진 것의 십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 라고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했어요. 그러나 그렇게 쉽게 가게가 정리되지 않아서 거의 매일 밤을 가게 마치고 교회 기도방에 가서 기도하다가 다시 가게로 돌아가서 가게에서 기도하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그 때 욥기 23장 8~10절 말씀인 "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시킨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 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를 하고, 많은 우여곡절 끝에 5월에 가게 정리가 되고, 약속대로 325만원을 하나님께 십일조로 드렸습니다. 저의 물질관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니까 십일조나 감사헌금을 쩨쩨하게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이러한 이유로 주님께서 약7년정도의 수입이 없는 가운데서도 풍요롭게 해 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후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평생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를 고민하며 기도했습니다. 

 

어쨌든 배움에 대한 恨은 남아 있어서 공부를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어떤 공부를 할까, 첫째 내가 좋아하는 일, 둘째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셋째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해는 수능 준비할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우선은 놀 수 없어서 매일 교회 가는 길에 교회 바로 옆에 있는 삼성생명에 직접 찾아가서 보험설계사를 몇 달 하며 전도도 하면서 보내자고 계획을 세우고 그런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 때는 전도지를 가지고 다니며 내가 만난 하나님을 전하고 보험가입도 권유하며 나름대로 보람도 되고 수입도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96년 3월부터 학원에 등록하려고 했으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세상 공부하기 전에 하나님 말씀 一讀하는 것이 도리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수능 학원은 한달 연기하고 성경1독을 먼저 했습니다. 그리고 4월부터 10년 넘게 손 놓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그 해 여름에 일본 단기선교를 다녀오고 수능시험을 보고 동아대 법대에 합격했습니다. 당시부터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하나님의 살아겠심을 믿으면서도 한동안 방황했던 것은 말씀이 바탕이 되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주님께서도 내가 힘든 순간순간마다 말씀해 주셨죠. 

 

저의 수험기간 동안은 잠언 4장 23절 "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와 시편23편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스물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대학이라니, 그것도 법대라니, 주위의 만류와 비아냥거림도 많았지만 저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죠. " 하나님! 제가 들어갈 때 입학금 내는 걸로 학비는 더 이상 내지 않게 해 주세요. 주님 믿습니다. "라고 기도했기에 정말로 학비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았고 항상 나는 하나님의 딸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학비뿐만 아니라 먹고 자는 것까지 학교에서 제공토록 해 주셔서 정말 매일 매일 감격하며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 드디어 사법시험 합격 

 

저는 내가 있는 곳에서 항상 하나님의 향기를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가는 곳마다 나의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먼저 말하곤 했습니다. 

"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꼭 하나님께서 제 길을 인도하실 겁니다. 지켜봐 주세요. "라고요. 

처음 수능 공부할 때부터 항상 성경책은 가지고 다녔고, 어느 곳에서건 성경 먼저 읽고 나서 기도한 후가 아니면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많았지요. 불교도, 천주교 등 타종교인들도 감동 받았다면서 제게 상담하러 오면, 저는 예수님을 전하고 제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과 함께 기도하곤 했습니다. 또 언젠가는 자신도 나처럼 자기네 경전을 열심히 봐야겠다는 소리를 듣고는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도서관도 제일 먼저 들어가서 맨 나중에 나온다는 각오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학교생활은 열심히 해서 학부성적은 좋았지만,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이 교회에서 봉사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고 내 주위의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는 것도 큰 일이라고 위안을 삼았지만, 그래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반년이나마 그룹서기를 맡으면서 매일 새벽 약 120명의 그룹식구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했던 그 날들, 고등2부 교사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했던 그 순간들은 지금 돌이켜보면 저에게 큰 축복의 시간들이었습니다. 

 

2001년 사시 1차에 합격하고, 2002년 2차 수험생활을 서울 신림동에서 했는데 온 몸은 안 아픈 데 없이 돌아가면서 아팠고, 외롭고 너무나 힘든 순간들이었습니다. 그 때마다 엉엉 울면서 이불 뒤집어쓰고 주님께 기도하며 하늘나나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초심을 되새겼습니다. 

 

평소에 긴장하면 손이 떨려서 글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는데 2차 시험 보는 4일 동안 매일 시편 23편 말씀을 묵상할 때 주님께서 저를 꼭 안고 계심을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정말 부족한 제가 그래도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합격할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누구에게라도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아니 계셨다면 오늘의 저는 없다고 말입니다. 또한 많은 분들의 기도와 사랑하는 모교 동아대 및 교수님들의 아낌없는 후원과 가족들의 격려와 저를 아는 모든 분들의 덕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험에 합격한 후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기도했던 대로 고향교회를 찾아가서 인사드린 것이었습니다. 시골교회서 잔치가 벌여졌고, 도로변에 '장길교회 출신 김미애 사법시험합격'이라는 현수막도 걸려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저는 겨우 터널을 벗어났을 뿐이고, 이 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 늘 깨어 기도하기를 힘써야겠다고 말입니다. 

 

지난 2월 21일에 서른다섯에 대학 졸업 학사모를 썼습니다. 제 마음 속에 따스함으로 남아 있는 고향교회 류광하 목사님과 사모님, 고향 친구들, 가족들, 후배들이 축하해 주셨습니다. 아쉽게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연수원 생활을 겸손과 성실로 잘 보내고, 세상의 법이 아닌 ' 하나님의 법 ' 이 우선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의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특히 저는 비행 청소년들을 선도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나오면서 

 

부족한 저의 글을 끝까지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지금의 이런 제 모습은 불과 6년 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입니다. 

제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계시지 않았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여러분 각자의 소중한 삶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셔서 세상 곳곳에서 영향력 있는 삶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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